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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디자이너가 잘 돼야 동대문 패션시장이 산다

‘미다스의 손’ 꿈꾸며 패션산업 집적지 발전 견인
박우혁 기자  뉴스종합 2020.08.0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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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패션산업 집적지인 동대문 패션시장에는 매주 수 만 벌의 신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20여 개 도매쇼핑몰의 만개가 넘는 점포에서 수 만 명의 디자이너들이 일주일 단위로 신상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월요일에 매장에 걸리는 신상품은 일주일 동안 전국에서 올라오는 소매상인과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게 된다.

신입, 메인, 알바, 오너 디자이너 활동

패스트 패션의 원조로 불리며 국내 패션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동대문 패션시장의 경쟁력은 우수한 상품과 빠른 납기, 저렴한 가격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 동대문 디자이너들이다.

동대문 디자이너는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 라인 전반에 걸쳐 일하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한다. 원단 선택, 공장 핸들링, 매장 출고 관리 등 주 업무인 디자인 외에 부수적인 업무가 많은 편이다.

힘든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도 많다. 우선 모든 일이 다 끝나면 자율 퇴근을 한다. 정해진 시간에 틀에 박힌 사무실에서 눈치 보면 일하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것이 동대문 디자이너의 장점 중 하나다. 처음에는 월급이 적지만 프리랜서로 일할 경우 자기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에 전문직 직업으로 괜찮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이 잘 나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입고 다니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동대문 디자이너는 신입, 메인, 알바, 오너 디자이너로 구분할 수 있다. 신입 디자이너는 원단 샘플을 구매하거나 작업지시서를 작성해 공장에 전달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메인 디자이너는 매장의 전체적인 스타일을 정하고 신상품과 리오더를 발주하는 등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통 3년차부터 시작된다.

메인 디자이너로 5년 정도 경력을 쌓으면 알바 디자이너로 뛸 수 있다. 알바 디자이너는 2~3개 매장의 디자인 일을 맡아주는 프리랜서를 말한다. 샘플을 제시하고 리오더를 관리하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다. 오너 디자이너는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디자이너로,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추구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자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고객 니즈에 맞게 신상품을 준비하고, 유행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하며, 공장을 잘 관리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사고가 나면 빠르게 대처하고, 옷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처우 개선 · 지속적인 교육 시스템 중요

패션산업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디자인이다. 소비자들이 옷을 선택할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만 먼저 디자인이 눈에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동대문 디자이너들은 그동안 국내외 소비자들의 니즈와 트렌드에 맞는 패션제품의 디자인으로 그 감성적 가치를 높이는 가운데 동대문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켜왔다.

동대문 디자이너들이 있었기 때문에 동대문 패션시장이 이만큼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봉식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동대문 디자이너들의 창조적 파괴의 디자인 작업은 마치 미다스의 손과 같은 위력을 발휘해 왔다”며 “동대문 디자이너들은 이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K-팝 스타들과 같이 K-디자인의 큰 꿈을 갖고 한류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동대문 디자이너들의 한계도 있다. 먼저 디자이너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표출하기가 어렵다는 환경을 들 수 있다. 브랜드 컨셉을 나타내는 상품보다 판매가 잘 될 만한 상품이 더 우선시되는 시스템 때문이다. 또한 매주 상품전개가 이뤄지다보니, 주단위로 나오는 상품의 디자인과 판매결과에 따라 인력 회전이 빠르게 진행된다.

동대문시장에서 20년 넘게 활동해 온 안수진 디자이너는 “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로 시작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겪다보면 결국 기존 시스템에 동화돼버린다”며 “판매가 잘 되는 디자인만을 쫓는 디자이너로 남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정연 디자이너는 “인터넷쇼핑몰이 많아지고 저가흐름에 떠밀리다보니 디자이너 자신만의 해석방식이 없어지고 있다”며 “가격경쟁을 위해 원단비나 공임비를 낮추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동대문 디자이너들이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동대문 패션시장 발전을 위해 지금보다 더욱 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처우 개선과 함께 지속적인 교육 및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디자이너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의 도약을 도울 수 있는 제도가 마련과 함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동대문에는 많은 노하우를 가진 경력자들이 존재하지만 뿔뿔이 흩어져 있어 시장 상인들 간의 네트워크와 이들을 응집해줄 허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대문 디자이너에게 듣는다 – 도정연 · 안수진 디자이너 인터뷰
동대문 디자이너는 멀티 플레이어… 제도·교육 뒷받침돼야 발전



도정연 디자이너(왼쪽), 안수진 디자이너(오른쪽).

동대문 디자이너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동대문을 무대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직접 물었다. 그들에게 동대문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아가 국내 패션시장에서 동대문이 갖는 중요성은 무엇인지, 또한 동대문의 현재 상황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의 발전 방안에 대한 의견 등 그동안 쉽게 알 수 없었던 동대문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동대문에서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도정연(이하 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apM’에서 한 남성복 업체의 생산, 디자인,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apM플레이스’에서 여성복을 맡게 되면서 총 두 업체를 담당하고 있다.

안수진(이하 안): 3개월 전까지 신평화패션타운, 청평화패션몰에 있으면서 상품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전반적으로 참여했다.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잠깐 쉬는 동안 개인 브랜드를 내려고 준비 중이다.

-동대문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도: 1996년에 졸업을 했는데 당시 남자 디자이너를 뽑는 내셔널 브랜드가 드물었다. 막내 디자이너는 피팅도 겸해야 했기 때문에 요구되는 신체자격에도 맞지 않았다. 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 때문에 내수도 안 좋았던 상황이었다. 처음엔 한 부티크에서 컬렉션 막내 디자이너로 약 3년 있었다. 퇴사 후 일을 찾던 시기에 한 선배의 권유로 1998년 동대문에 들어오게 됐다. 처음부터 장사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일을 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안: 패션연구원을 거쳐 방송국 코디네이터로 먼저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8년 밀리오레가 오픈할 때 동대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동대문 디자이너는 경력에 따라 어떤 일을 하나.
안: 경력에 따른 업무 단계 구분이 명확하게 나뉘진 않는다. 동대문 디자이너는 생산 라인 전반에 걸쳐 일하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한다. 원단 선택, 공장 핸들링, 매장 출고 관리 등 주 업무인 디자인 외에 부수적인 업무가 많은 편이다. 동대문 디자이너만의 특색이라고 생각한다.

도: 브랜드 디자이너와 달리 생산 라인까지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빠르게 경험을 쌓기엔 좋은 환경이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안: 낮시장을 예로 들면, 아침 8시에 미팅을 시작해서 오더를 체크한 후 시장으로 간다. 그 후 공장에 픽업을 보내고 그날 나온 제품을 받아서 확인하는 스케줄이다. 밤시장은 보통 오후에 미팅을 시작한다.

-동대문 디자이너로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
안: 디자이너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표출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점주들은 보통 브랜드보다는 개별 상품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브랜드 컨셉을 나타내는 상품보다 판매가 잘 될 만한 상품이 더 우선시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이유로 점주와 의견 차이가 생기고 갈등을 겪는다. 점주들이 디자인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계속 마찰이 생기다보면 결국 퇴사로 이어진다.
또한 매주 상품전개가 이뤄지다보니, 주단위로 나오는 상품의 디자인과 판매결과에 따라 인력 회전이 빠르게 진행된다. 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로 시작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겪다보면 결국 기존 시스템에 동화돼버린다. 판매가 잘 되는 디자인만을 쫒는 디자이너로 남게 될 수도 있다.

-남성복 디자이너는 어떤가.
도: 인터넷쇼핑몰이 많아지고 저가흐름에 떠밀리다보니 디자이너 자신만의 해석방식이 없어지고 있다. 가격경쟁을 위해 원단비나 공임비를 낮추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상품이 판매율은 높다.
또 요즘은 사입하는 이들이 티셔츠는 얼마, 점퍼는 얼마 이런 식으로 가격 기준을 결정하고 온다. 그 기준을 초과하면 옷이 나가질 않는다. 디자인을 개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동대문 남성복 주 소비자인 1020 남자세대도 품질보다 가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니즈에도 맞지 않다.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려고 해도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다면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당장 빨리 나가는 상품을 만들어서 팔아야한다. 한정된 원단, 한정된 디자인에만 머물게 되는 상황이 디자이너로서 힘든 부분이다.

안: 실질적으로 힘든 점은 근무환경이나 대우 측면이다. 우리는 업무시간이 불규칙적이다. 퇴근시간이 확실히 정해져있지 않다. 오후 8시부터 밤시장이 열리면 그때부터 제2의 업무가 시작되는 셈이다. 시장에 내놓은 상품과 관련된 여러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그 외 4대 보험이나 퇴직금 같은 기본적인 복지나 처우가 부실한 편이다. 제도권 브랜드 디자이너와 이런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어떤가.
안: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동대문 디자이너로서 보람 있었던 점은.
안: 옷을 완성해서 출시하면 반응이 돌아오기까지의 속도가 빠르다. 주문량, 반품량을 바로 확인 가능하기 때문에 평균 2~3일 내로 반응이 어떤지 나오는 것이다. 내가 디자인한 상품의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계속 공부를 해나가다 보면 스스로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도: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소재를 선택해서 샘플을 보고, 생산 공정을 직접 확인하고 상품화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내가 2~3일 전에 출시한 옷을 누군가 입고 다니는 걸 보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동대문시장이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왜, 얼마나 어렵나.
도: 온라인 비중이 커지고 요즘은 다이렉트 오더 어플까지 생기면서 도매시장이 특히 어려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도매시장이 어떻게 어려워지는 건가.
도: 이를테면, 어떤 상품을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다. 주문량 증가를 기대할까 싶으면 갑자기 주문이 끊겨버린다. 그런데 어플이나 온라인 사이트에는 이미 ‘핫 아이템’이 되어있다. 도매를 건너뛰는 것이다. 도매가 마진을 못 남기니 점점 더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안: 디자이너 입장에선 점포와 미팅이 많아야 수입가 생기는데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미팅 횟수가 감소하다 보니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동대문시장 발전을 위한 제안이 있다면.
안: 실력 있는 디자이너의 도약을 도울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시장 디자이너들은 경력이 아무리 길어도 금융권에서는 무직으로 여기기 때문에 대출이 막혀있다. 창업발판을 위한 자금마련이 힘들다.

도: 도매시장은 항상 오프라인이 주 무대였다. 현재 패션업계 전체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큰 흐름에 적응하기란 더 어려운 환경이다. 시장을 이끄는 개인 자영업자들이 시대 변화에 적응해나갈 수 있게끔 기관이나 단체 차원에서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 발전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나 단체들이 상인들의 뜻과 맞지 않게 움직이는 것 같아서 아쉽다.

안: 동대문에서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부재 역시 안타깝다. 전문적인 컨설팅이나 커리어 상담이 진행되는 것이 없다. 동대문에는 많은 노하우를 가진 경력자들이 존재하지만 뿔뿔이 흩어져 있다. 또 그런 정보들을 필요로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시장 상인들 간의 네트워크, 이들을 응집해줄 허브가 없다.

-디자이너들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가 따로 있나.
안: 시장의 특정 가게에 사람들이 모여 지역마다 특색 있는 공장이 어디인지, 어떤 공장에서 어떤 퀄리티를 낼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교류하기는 한다. 이런 커뮤니티는 있지만 시장의 중심에서 확실한 허브 역할을 해줄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체 패션산업에서 동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안: 50%가 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메이저 업체도 동대문에 와서 샘플을 보는 경우가 많다. 동대문에서 작업이 충분히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꼭 해외에 나가서 샘플을 가져올 필요가 없게 된다.

도: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특히 10대, 20대에게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1020세대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무신사에 동대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입점 브랜드가 많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동대문은 어떤 의미이고,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 동대문시장에서 20년 가까이 있으면서 생존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 일하다보니 많은 부분을 놓치며 지냈던 것 같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된 마인드가 현재 개인 브랜드를 준비하면서도 계속 따라다닌다. 동대문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디자이너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도: 개인 브랜드 런칭을 원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동대문은 최적화된 장소다. 디자인은 물론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동대문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깊이를 만드는 건 온전히 개인의 역량에 달렸다.

안: 새롭게 동대문에 들어올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장사만을 위한 디자이너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게 동대문 시스템에서는 유능한 디자이너일진 몰라도, 거기에 너무 빠지면 나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생길 수 있으므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
박우혁 기자(hyouk@kfashi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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