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서울쇼룸 대표
패션 디렉터로 좋은 브랜드를 찾고 그 스토리를 살펴보고, 디렉터로서 느낀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큰 기쁨을 얻는다. 서울쇼룸(www.seoulshowroom.com)은 빠르지 않아도 묵묵히 조금씩 그런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와 그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이제는 나만 알고 있는 스토리가 점점 먼지 쌓인 일기장속 추억처럼 묵혀만 간다. 더 늦기 전에 알고 보면 정말 괜찮은 브랜드 스토리를 세상으로 열고 널리 전파되길 바라며 이 칼럼을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이름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외들’. 그리고 이외들을 만들어가는 성범경 디자이너가 주인공이다.
‘이외들’ 2023 SS 컬렉션 ‘Wellbeing Cure All’
햇살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데님셔츠, 담배를 피우면서도 폐 건강을 자랑하는 도라지 티셔츠, 마치 아늑한 빨간 벽돌집을 연상케 하는 재킷과 같이, 각 제품에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숨어있는 이외들은 성범경 디자이너의 주도로 2022년 가을에 론칭한 신생 브랜드이다. 어떤 계기로 이야기를 담은 브랜드를 전개하게 되었는지 디자이너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성범경 디자이너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 아웃도어 패션 회사에서 짧은 기간 일을 했다. 그러나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패션 회사에 회의를 느끼며 그래픽 디자이너로 직업을 바꾸었고, 새로운 회사에서는 주로 교재를 디자인하였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을 위한 티셔츠를 만들며 다시 조금씩 패션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후 역사 이야기를 티셔츠에 담는 브랜드 ‘개식이(개념과 의식 있는 이들)’를 만들어 회사 내부에서 자투리 시간에 운영하게 되었다.
개식이는 사회적 기업의 일환으로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였고, BGF 리테일 및 LG 유플러스와의 협업을 통해 점차 성장하였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브랜드 개식이를 전업으로 운영하기로 하였고, 회사는 이를 수익성 있는 사업 모델로 만들기 위해 회사의 이름까지 ‘개념과 의식 있는 이들’로 변경하였다. 수익의 다각화를 위해 티셔츠와 맨투맨, 소품 등에 머문 상품군을 재킷과 바지 등으로 확장하려 했으나, 구매 고객층의 연령이 낮아 사업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컨셉과 타깃층을 세우고 브랜드 ‘이외들’을 론칭하였다.
‘개식이’의 갓을 재해석한 티셔츠
9. 이외들은 먼저 역사의 범위를 대한민국 근현대사로 한정했다. 역사를 알리는 목소리를 조금 줄이고, 근현대사에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주제로 방향을 전환했다. 고객이 옷을 입으면서 과거의 향수에 빠져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브랜드 슬로건을 ‘Nostalgic Korea’로 정했다.
또한, 타깃층은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예술을 향유하는 남녀로 정했다. 평범한 이들이 아닌 새로움을 잘 받아들이는 그 외의 사람들을 위한 옷을 디자인한다는 의미에서 이외들이라는 이름을 지었다(이는 개념과 의식이 있는 ‘이들’과 방향을 달리한다는 중의적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그 후 니트 디자이너, 생산 관리자, 콘텐츠 제작 감독을 영입하여 팀을 구성하였다. 이외들 팀은 타 브랜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디테일로 차별화를 추구했으며, 피상적인 주제 대신 익숙한 주제를 이외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아파트의 불빛을 망점으로 나타낸 맨투맨 티셔츠
이외들의 디자인 방식은 이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한 후, 그 주제를 재해석하여 디자인에 반영한다. 개식이와의 차이점은 그래픽뿐만 아니라 의복의 색, 형태, 디테일, 후가공에서도 주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2022년 FW 컬렉션에서는 90년대 주거 환경을 담아내며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놀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에 올려다보던 아파트 베란다의 불빛을 짙은 회색 원단에 망점 실크 스크린으로 나타냈다. 또한 외할머니 집의 양옥 천장에서 볼 수 있던 무늬를 니트 패턴으로 재현했다.
사진2_과일망을 표현한 메시 베스트
2023년 SS 컬렉션에서는 2000년대 유행한 웰빙을 컨셉으로 삼았으며, 이외들 팀은 이를 아이러니하게 해석하여 상업적으로 변질한 웰빙을 폐에 좋은 담배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이 아이러니를 이어 겨울용 니트 패턴을 여름용 니트에 적용한 카라 티셔츠를 만들었다. 또한, 건강에 좋은 과일을 담던 과일 망을 메시 니트 베스트로 표현했다.
가짜 소풍의 의도를 보여주는 2023 SS 룩북
이외들의 룩북에서도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외들 팀은 사진작가에게 옷을 덜 드러내도 괜찮으니 이야기가 더 잘 표현되도록 요청했다. 2023년 SS 룩북에서는 웰빙의 아이러니를 가짜 소풍(Fake Picnic)이라는 주제로 재해석했다. 종이로 만든 과일, 조화, 종이 백조(이는 2000년대 유행한 종이 백조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마실 수 없는 음료 등을 통해 이 아이디어를 구현했다. 배경으로 회화 작품을 사용했으며, 어떤 장면에서는 스탠드에 걸린 배경 그림을 드러내어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가짜 소풍의 의도를 보여주었다.
이외들 팀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난 아버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이촌향도 현상을 주제로 2023년 FW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Peter Paul and Mary의 곡 ‘500 miles’에서 느껴지는 향수를 담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감정을 표현할 예정이다. 또한 이주 경험의 의미를 깊이 탐색하려고 한다. 이외들이 주제를 어떤 독특한 이야기로 풀어낼지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