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와 비교해서 더욱 어려운 사업 환경이다. 내수는 부진하고 중국의 주문은 많이 줄었다.”(DDP패션몰 상인)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 때는 정부 지원도 있었고, 저금리 대출도 있어서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자는 생각이 강했지만 지금은 경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아예 얼어붙은 상태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과 이자 부담 등으로 많이 힘들다.”(디오트 상인)
“코로나 이후 도매 판매가 온라인으로 완전 전환된 상태라 매장 손님은 줄고, 온라인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사진작업 또는 SNS에 더 많은 광고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디자인과 함께 사진촬영과 보정 여러 SNS 관리까지 추가로 할 일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청평화 상인)
연이은 악재로 공실률 갈수록 증가
국내 최대 패션산업 집적지인 동대문패션타운이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유통 환경이 변할 무렵 2017년 발생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지면서 위기를 맞기 시작한 동대문패션타운은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빈사 상태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코로나가 엔데믹(일상적 유행)으로 바뀌면서 경기회복을 기대했지만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 현상이 덮치면서 코로나 시기보다 더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역시 국내외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아 매출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대문패션타운에는 갈수록 빈 매장이 늘고 있다. 동대문패션타운에는 30여개 도소매상가에 2만5천여개 매장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이중 약 30~40%는 빈 매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실률이 해마다 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공실률은 몇몇 소매상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도매상가의 경우 아직 10~20% 내외에 그치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 입점 대기업체가 있을 정도로 공실 걱정을 안 하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처럼 동대문패션타운은 국내 패션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상권 회복은 요원한 상황이다. 상인들은 현재 동대문패션타운의 가장 큰 문제로 유동인구 감소와 공실률 증가를 꼽고 있다.
동대문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는 벨포스트 상인은 “대부분 비대면 비즈니스로 인해 유동인구 감소, 시장의 활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유동인구 증가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경기침체와 유동인구 감소는 매출 감소와 빈 매장 증가로 이어져 공실률을 걱정하는 상인들도 늘고 있다. 제일평화 상인은 “현재 동대문패션타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몇 상가를 제외하고 공실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제는 손님이 온라인으로만 유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실이 많은 상가나 층은 손님 유입이 어렵고, 좋은 상권으로 옮기면 좋겠지만 임대료 격차가 너무 커 이마저도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퀸즈스퀘어 상인은 “소비자들에게 동대문 의류가 아직 퀄리티 낮은 상품이라는 인식이 있는 거 같다. 동대문 제품 역시 브랜드만큼 우수한 품질을 위해 많은 상인들이 노력하고 있음에도 가격이 저렴해야한다는 인식이 더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만드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국내 시장이 좁아서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고 있는 점” “기존 브랜드들의 저가 정책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가상승 및 경기침체”, “개인 브랜드가 많이 생겨나서 동대문의 저렴하고 우수한 디자인이 대우를 못 받고 있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언급했다.
동대문 시스템 점검 후 정책 수립해야
상인들은 동대문패션타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상인들의 경쟁력 확보와 빈 매장을 채우기 위한 상가 및 지자체 차원의 노력을 당부했다.
벨포스트 상인은 “상인들은 디자인 및 제품력 상승을 통한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에 노력하고, 상가들은 빈 매장을 채우기 위한 정책 수립이 중요하다. 정책은 기존 상인들의 임대료 및 운영비 상시절감, 빈 매장을 채우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당근책, 노후화된 시설 교체 및 수리 등을 들 수 있다. 지자체는 해외 바이어의 배송비 지원이나 낙후된 환전 시스템 개선 등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죤패션몰 상인도 “우선 공실이 있는 상가들은 합리적인 임대료 감면으로 공실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상인들도 멀리 내다보고 좋은 상품을 만들어야 결국 모두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상인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상인들도 많았다. 퀸즈스퀘어 상인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으로 원하는 상인들은 꾸준히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의 국내외 홍보도 필요하다. 과거에는 자생적 홍보로 동대문을 알리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국가적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생산을 강조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디오트 상인은 “상가는 매장의 부담을 덜 수 있는 가게세를 줄이고, 상인은 지속적인 새로운 디자인을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 만들어 중국 물건이나 해외 제품을 파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지자체는 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는 국내 생산 제품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제일평화 상인은 “중국산이 동대문의 가격경쟁력을 가져가면서 중국 생산 의존도가 너무 높아졌다. 그러나 중국 생산은 여러모로 리스크가 크다. 동대문의 장점이던 빠르고 탄력적인 생산대응도 어렵다. 그렇다보니 국내 생산 라인은 규모가 많이 줄었다. 동대문뿐만 아니라 국내 생산 라인 전체를 아우르는 부흥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퀸즈스퀘어의 한 젊은 상인은 “요즘 옷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백화점과 시장 상품뿐이 아니고 같은 시장 안에서도 그렇다. 그러다보니 한국옷을 카피해서 중국에서 생산하는 경우도 많다. 동대문은 정말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점점 가격경쟁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소규모 공장들은 일할 사람이 없어서 물량을 못 받고, 공임도 점점 오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동대문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원하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DDP 서쪽에 소매·동쪽에 도매상권 형성
동대문패션타운에는 30여개의 크고 작은 도소매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이곳에 입점해 있는 매장 수만 2만5천여 개에 달하고, 매일 엄청난 양의 신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동대문패션타운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소매상권이, 동쪽에는 도매상권이 자리 잡고 있고 영업시간도 다르다.
소매상권에는 평화시장, 통일상가, 동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 등 전통시장과 원부자재 상가를 비롯해 밀리오레, 두타몰, 현대시티아울렛동대문점, 헬로에이피엠, 굿모싱시티쇼핑몰 등 대규모점포와 복합쇼핑몰이 있다.
동대문시장의 역사는 1905년 광장시장의 설립을 기점으로 삼고 있지만 패션시장으로서의 기능은 1962년 평화시장의 신축과 함께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평화시장의 성공이 통일상가, 동화시장, 신평화, 동평화 등 1980년대 초반까지 집중적인 상가의 설립 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8월 오픈한 밀리오레는 당시 하루 18시간 영업과 이색 판촉행사, 색다른 이벤트를 선보이며 국내 패션유통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듬해에는 두타몰이 등장해 동대문을 재래시장이 아닌 젊은 패션시장으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했다.
도매상권에는 동대문패션타운이 국내 최대 패션산업 집적지라는 명성을 얻게 한 20여개 도매상가가 밀집해 있다. 동대문이 패션 도매시장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현대적 패션상가인 아트프라자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당시 우리 사회는 교복자율화와 함께 아시안게임, 올림픽 개최를 거치며 패션 의식이 완전히 서구화되어 가고 있었다.
아트프라자는 이런 가운데 영업시간 조기 오픈과 지방에서 올라오는 전세버스 유치라는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 성공을 거두게 된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캐주얼에 대한 변화된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가격경쟁력도 확보하면서 1990년 이전까지 의류도매시장의 중심이었던 남대문시장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아트프라자의 성공은 평화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동대문에 상가 설립 붐을 조성, 디자이너클럽, 팀204, 엘리시움, 에이피엠 등이 잇달아 들어서게 된다.
도매시장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 아니면 헷갈리는 것 중 하나가 상가별 영업시간이다. 20개가 넘는 도매쇼핑몰의 개, 폐점 시간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에이피엠과 디디피패션몰, 디자이너크럽, 누죤, 아트프라자, 팀204 등은 오후 8시~9시에 문을 열고, 다음날 오전 5~6시 문을 닫는다. 반면 디오트와 청평화패션몰, 엘리시움, 테크노상가 등은 밤 11~12시 문을 열고, 다음날 낮 11~12시에 문을 닫는다. 신평화패션타운, 동평화패션타운, 패션남평화, 광희패션몰 등은 층별로 영업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방문 시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상가별로 영업시간이 다른 것은 순차적으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차별화 정책의 일환으로 다른 상가와 오픈시간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부터는 도매상가에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바람이 불면서 금, 토요일 휴무하는 주5일 영업제가 도입됐다.